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는 사춘기 소녀의 자립과 성장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애니메이션 속에는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서 여성의 성(性) 정체성과 몸의 변화, 감정의 흐름, 그리고 사회적 시선 속에서의 여성 주체성 형성 과정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특히, '키키'가 갑자기 ‘날지 못하게 되는 순간’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의 장면이었지만, 이는 곧 성적 자각과 내면의 변화, 자아 혼란과 회복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는 핵심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마녀배달부 키키' 속에 숨겨진 성(性)의 상징 구조를 중심으로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날 수 있다는 것 – 성(性)과 자아의 상징
작품의 초반, '키키'는 마녀의 전통에 따라 홀로 도시로 나서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가진 능력은 하늘을 나는 것으로 즉, 빗자루를 타고 비행하는 마법이다.
이는 단순한 판타지적 설정을 넘어서 자립과 자기 주도성, 여성의 자유로운 주체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날 수 있음’은 '키키'에게 있어서 곧 성적 자아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녀를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익힌 이 능력은 자기 몸과 감정, 삶을 스스로 조절하는 상징적 힘이 된다.
마치 몸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감각하는 사춘기 시기의 소녀가 그렇듯 '키키'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독립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지만 이 자아는 사회와의 충돌, 감정적 상처, 육체적 피로 속에서 점점 흔들리게 된다.
날지 못하는 몸 – 사춘기와 여성성의 상실감
작품의 중반, '키키'는 갑자기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되면서 그녀의 마법은 점차 사라지고, 심지어 고양이 ‘지지’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변화는 명백한 사춘기적 상징이다.
여기서 ‘날지 못하는 몸’은 단순한 능력 상실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시기를 표현한다.
감정적 좌절(일에서의 실수, 친구들과의 거리감), 신체적 피로(무기력감, 무언가가 무너진 듯한 느낌), 심리적 위축(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감각) 등은 모두 성적 자각의 시기에 겪는 혼란의 층위다.
이 시기 '키키'는 마법도, 자립도, 일상도 모두 버거워지며 자신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하게 된다.
이는 단지 성장통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역할과 자기 자아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균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지 않는 몸, 단절된 내면 – ‘지지’와의 분리
고양이 ‘지지’는 키키의 내면을 반영하는 존재로 작품의 초반, '지지'는 '키키'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고, 위로하고, 현실과 유머를 연결해주는 캐릭터로 기능한다.
하지만 '키키'가 날지 못하게 되면서 '지지'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되고, 이는 곧 내면의 감정과의 단절, 어린 자아와의 이별을 상징한다. '지지'와의 소통 불가능은 단지 ‘성장’이라기보다 여성으로서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 몸, 성의 변화가 언어화되지 못하고 억압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은 많은 여성들이 사춘기나 성인 초입에서 겪는 ‘감정의 언어 없음’과 연결되며 정체성 형성 과정의 고독함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다시 나는 순간 – 자립과 성(性)의 통합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키키'는 친구 '톰보'가 위기에 처한 순간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데 이 장면은 단순한 활극이 아니라 자신의 몸, 감정, 성적 자아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전환의 순간이다.
회복이 외부의 도움이나 마법이 아니라 자기 안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키키'는 더 이상 어릴 적 자신이 아니며, 마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하게 되며 그녀는 마법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화해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날게 된 '키키'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과 능력을 받아들인 주체다.
그녀의 비행은 곧 성(性)의 자각, 감정의 회복, 그리고 자기 수용의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키키'는 ‘마법소녀’가 아닌 성(性)의 주체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단순한 성장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그것은 성(性)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구성해가는 복합적 내면 여정이다.
'키키'는 마법을 통해 날지만, 실제로 그녀가 겪는 일은 몸과 감정, 사회적 정체성의 전환과 통합이다.
지브리 특유의 상징성과 미니멀한 대사 속에서 우리는 '키키'의 몸, 고양이 '지지', 비행의 상실과 회복을 통해
자신의 ‘여성됨’을 이해하고 수용해가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키키'는 단지 마녀가 아니라 몸의 변화, 감정의 혼란, 사회의 요구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모든 이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