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 1967~)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립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이자, 지브리의 작품 세계를 현실, 청춘, 디지털 실험 등으로 확장해 온 연출가다.
2006년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로 전격 감독 데뷔한 이후, '코쿠리코 언덕에서', '아야와 마녀' 등으로 지브리 전통과의 거리두기, 새로운 매체 언어의 실험, 그리고 ‘지브리 2세대’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시험해왔다.
그는 애니메이션 전공자도 아니고,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처럼 상상력의 천재도 아니지만 조경 설계자에서 연출가로, 전통과 단절된 새 얼굴로, 지브리의 또 다른 가능성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미야자키 고로의 인생, 연출 철학, 주요 작품별 해석, 내부 평가, 아버지와의 관계, 지브리의 미래와 연결된 위치까지 총체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자란다는 것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는 무게
1967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어릴 적부터 ‘지브리’라는 거대한 창작 세계를 곁에 두고 자랐다.
하지만 그가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었다거나 예술가로서의 꿈을 일찍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와 감정적 거리를 둔 채 성장했는데 “아버지는 늘 바빴다. 집보다 스튜디오에 더 있었고, 어릴 적 나는 그를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했다.”라고 회고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애니메이션을 피상적으로 대했으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없었다.
대학은 지바대학교 조경학과에 진학하여 공원 설계, 도시 환경 디자인, 건축 프로젝트 등 물리적 공간을 설계하는 직업인으로 커리어를 쌓았는데 실제로 아키타현의 자연공원 프로젝트, 교토의 도시환경 재정비, 공공 주거지 내 정원 설계 등에서 활동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한 실무자였다. 그의 세계는 철저히 현실적이었고, 창작은 ‘기획’과 ‘디자인’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미타카의 지브리 미술관 – 공간을 통한 이야기의 구현
2000년대 초, 스튜디오 지브리는 도쿄 미타카에 ‘지브리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하며, 지브리 세계를 전시와 공간으로 구현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선보였는데, 그 설계와 운영 총괄자로 선택된 인물이 바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었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설계한 손그림 초안을 건축 도면으로 실현했고, 전시 기획부터 동선 구성, 체험형 콘텐츠까지 모든 공간 구성의 감성적 리듬을 설계했다.
지브리 미술관은 단순한 캐릭터 전시 공간이 아니라, “지브리 세계관을 몸으로 체험하는 상상의 건축물”이며,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이 공간에서 처음으로 ‘창작자와 관람자의 감정이 만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전반에 공간의 질감, 감정을 반영하는 배경,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는 구도 등으로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 준비되지 않은 감독, 그러나 도전을 택하다
2006년,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전례 없는 선택을 받는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기작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연출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수십 년 전부터 꿈꿔온 기획이었지만, 권리 문제와 일정 충돌로 무산되었고, 결국 미야자키 고로에게 감독 데뷔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한 번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비전문가였다는 점이다.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고로는 아직 애니메이션을 이끌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나 미야자키 고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콘티부터 레이아웃, 스토리 전개까지 총지휘하며 원작의 세계관을 각색해 철학적 성찰을 담은 애니메이션 구성, 캐릭터보다는 분위기 중심 연출을 시도했다. 결과는 흥행은 성공, 평가에서는 혹평이었다.
시각미와 음악은 호평이었지만 감정선의 부족, 캐릭터의 매력 부재와 어슐러 르 귄 원작 팬들의 거센 반발이 따랐다.
무대는 너무 컸고, 비판은 혹독했지만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지브리의 다른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세계는 환상이 아닌 혼돈과 정적, 존재의 질문이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 아버지와의 화해, 정서적 감각의 개화
2011년, 그는 다시 연출을 맡는다.
이번엔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각본을 맡은 '코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란 작품으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한층 성숙된 연출로 정서 중심의 스토리 전개, 청춘의 서투름과 성장, 공간과 시간의 미장센을 섬세하게 구현하며 비로소 ‘감정과 서사의 균형’을 확보했음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일본의 전후 재건기이자 고도 성장기 이전의 일상을 그리며 과거와 현재,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교차라는 주제를 배경으로 가장 인간적인 지브리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미야자키 고로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부자 관계에서 “말없이 서로를 존중한 작품”으로 기록되며, 지브리 내부에서도 미야자키 고로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아야와 마녀' – 실험은 실패인가, 미래인가
2020년, 미야자키 고로는 지브리 역사상 최초의 풀 3D CG 애니메이션인 '아야와 마녀'로 귀환한다.
이 작품은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고,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극장 개봉이 아닌 TV 방송용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이 작품에서 전통 셀 애니메이션의 탈피, 디지털카메라 워킹, 실사 영화 같은 구도와 조명을 통해 지브리의 미학을 디지털로 이식하려 했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인물의 표정과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이 사라졌으며 이야기 구조가 약해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 지브리의 한 방향성을 시험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시도’라기보다는 ‘실험적 도전’으로 평가받는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에 지브리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CG도 언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 문법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연출의 철학 – 고로가 그리고 싶은 세계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것과는 다른 감성을 지향한다.
요소 | 미야자키 하야오 | 미야자키 고로 |
주제 | 생명, 환상, 모험 | 성장, 감정, 일상 |
리듬 | 역동적, 모험 중심 | 정적, 감정 중심 |
시선 | 판타지와 자연 | 현실과 공간 |
방식 | 손그림 감성 | 실사적 감성 + 디지털 실험 |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강한 메시지나 선명한 감정보다 어중간함, 불완전함, 설명되지 않는 여운을 추구하는데, 이러한 성향은 '게드전기: 어시스의 전설'의 철학적 구도,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여백, '아야와 마녀'의 정적 구성에서 반복된다.
내부 평가 – 지브리의 후계자인가, 이방인인가
지브리 내부에서 미야자키 고로는 복잡한 위치에 서 있다.
차세대 감독 1순위이지만 연출 경험 부족과 미숙함에 대한 우려 어린 시선이 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비교 대상이면서 지브리의 디지털 전환을 시험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지브리의 전통과 변화, 환상과 현실 사이의 균열 위에 선 사람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연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TV, 웹, 디지털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려 한다.
그는 스스로 “나는 지브리의 고전이 아니라 지브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입장에 있다.”라 말한다.
미야자키 고로 – 반듯하진 않아도, 여전히 걷는 사람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의 정통 코스를 걷지 않았으며, 작품마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길을 시도했고,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모방하지 않았다.
그는 지브리라는 거대한 유산 속에서도 자기 방식으로 감정을 말하고, 자기 리듬으로 연출을 실험하며, 지브리의 미래적 언어를 고민하고 있다.
완성된 감독은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성을 멈추지 않는 창작자로 지브리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후’를 고민할 때, 그에 대한 가장 조용한 해답은 어쩌면 지금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연출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